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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전형적인 B급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B급 영화라는 명칭은 본격적인 텔레비전 시대의 등장 이전인 192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반에 걸친 이른바 미국 할리우드의 황금시기에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당시 영화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감안하여 동시상영이 유행하였는데, 이때 제대로 만들어진 영화 즉 A급 영화에 붙여서 상영할 목적으로 무명 배우와 감독을 동원하여 저예산으로 대충 만든 영화를 B급 영화(B movie)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B급 영화라는 명칭은 오래 동안 질이 떨어지는 영화를 의미하는 경멸적인 용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예술성과 작품성을 지닌 저예산영화들이 속속 소개되면서 이들을 아울러는 긍정적인 용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한편 C급 영화라는 용어도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B급 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한 단계 아래 등급의 영화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됩니다. 또 이 영화들이 주로 케이블 TV 방송용으로 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케이블(Cable)의 C를 딴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소개하는 영화 <크랭크; 하이볼티지>는 어쩌면 C급 영화의 범주에 넣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막장 영화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일반적인 영화 관람객의 시각에서 볼 때 심란한(?) 화면들을 계속 제공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트랜스포터> 시리즈로 유명세를 탄 제이슨 스타뎀이라는 1급 배우가 주연을 맡은 점이나 인공심장이라는 첨단 의학의 개념을 동원한 장기 적출 아이디어 등은 저급 영화로 일방적으로 무시하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이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보다 제대로 된 A급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 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아무튼 본 영화는 이야기 자체가 전편의 마지막 장면에 바로 이어 시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편의 스토리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2006년 출시된 전편 크랭크(아드레날린 24)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그린 영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멕시코계 갱단 두목 칼리토(카를로스 산츠 분)가 그의 세력을 침식해 오고 있는 중국 갱단의 두목 돈 킴(케온 영 분)을 제거하기 위해 청부 살인업자를 고용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영국 출신의 프리랜서 킬러 체브 첼리오스(제이슨 스타뎀 분)가 이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강한 중국 갱단의 반격에 칼리토는 곧 그의 계획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방책으로 자기의 계획이 아니라며 그에 대한 증명으로 오히려 체브를 제거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해 베로나(호세 파블로 칸틸로 분)가 몰래 체브의 집에 들어가 베이징 칵테일이라는 약을 주사합니다. 이 약은 부신(adrenal gland)으로부터 아드레날린 호르몬 생산을 중단시켜 결국 심장 박동 중단으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약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체브는 녹화된 CD를 통해 그의 수명이 앞으로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피아의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는 덕 마일즈(드와이트 요와캠 분)는 체브에게 그가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흥분 상태를 유지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아드레날린 대용으로 에피네프린을 구해 주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체브는 살아남기 위해 병원에 침입해 에피네프린을 탈취하기도 하고 흥분 상태 유지를 위해 도적질을 하거나 경찰에게 일부러 싸움을 거는 등 온갖 일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심장을 자극하기 위해 그의 애인 이브(에이미 스마트 분)과 차이나타운의 노상에서 섹스를 하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체브는 칼리토와 베로나 일당과 일전을 벌입니다. 이 와중에 칼리토는 교활한 베로나에게 죽임을 당하고 베로나는 칼리토의 헬기를 타고 도망을 시도합니다. 체브는 헬기까지 베로나를 따라가 결투를 벌이다 둘 다 공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수천 피트 공중에서 낙하 중에 체브는 베로나의 목을 꺾어 죽이고 그는 지상의 자동차 지붕에 떨어진 뒤 튕겨 나와 길거리에 떨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드레날린 분비가 지속되면서 그의 심장이 박동하는 것을 암시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2009년에 출시된 영화 <크랭크: 하이볼티지>는 정확하게 바로 이 장면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속편 역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마크 네빌딘과 브라이언 테일러 두 사람이 감독과 극본을 겸했습니다. 등장인물도 전편의 인물들이 대부분 그대로 나오고, B급 영화답게 한 달 만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헬기에서 추락해 망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정체불명의 중국인들이 나타나 차로 어디론가 데려 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가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떤 간이 병원의 수술대 위에 올라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정체불명의 의사들이 그의 심장을 제거하고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심장으로 이를 대체하는 수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사진 2, 3).
설상가상으로 운전 도중 충돌 사고가 나면서 외부 배터리가 망가지는 일이 생깁니다(사진 4).
영화 내내 스트립 걸과 악당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요란한 추격전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체브는 그의 심장이 제거된 이유가 중국 갱단의 최고보스 푼 동(데이비드 캐러딘 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노쇠한 푼 동은 심장병으로 심장이식만이 유일한 살길이었는데 그 대상으로 젊고 건강한 체브의 심장이 선택된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체브는 모든 악당들을 다 제거하고 덕 마일즈의 도움으로 푼 동에게 빼았겼던 심장을 다시 자기 가슴 속으로 되찾는 수술을 받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수술의 성공을 암시하는 장면을 보여 주며 끝을 맺습니다.
앞서도 잠시 언급한대로 이 영화에서는 인공심장이라는 첨단 인공장기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갱단의 최고보스 푼 동의 심장이식을 위해 중국 의료진이 체브의 심장을 적출해 가는 대신 그 자리에 인공심장을 이식시켜 준 것입니다(사진 6).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생명 연장을 위해 내부 배터리를 추가로 충전시키려고 고압 전신주의 전기를 끌어안거나 점프케이블을 몸에 갖다 댄다던지 하는 행위는 사실 과학적 근거와는 관계없는 영화상의 극적 효과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인공심장이 멈추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마찰 전기력을 얻기 위해 급박하게 공공장소에서 애인과 열렬히 섹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감독의 과학적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실제 영화에서처럼 인공심장의 외부 배터리가 망가진 경우에 있어 가장 현실적인 대처 방법은 아비오메드 회사에 연락하여 대체품을 공급받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관점은 중국 갱단의 노쇠한 보스 푼 동이 병든 자신의 심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인공심장이 아닌 심장이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현대 의학적 상식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적인 내, 외과적 방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심장질환 환자에서 현재 가장 효과가 있는 치료 방법은 타인의 심장을 이식받는 심장이식수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의 심장을 공여 받는 데에는 큰 제한이 있을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 몸속에 두 개가 존재하여 하나를 적출하여도 생명과는 관계없는 콩팥과는 달리 심장의 적출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뇌사 상태에 있는 한정된 환자를 통해서만 심장 공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인공심장에 대한 개발이 본격화된 것도 바로 이런 공여 심장의 부족 때문에 추진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82년 12월 미국 유타대학에서 시행되었던 세계 최초의 완전치환형 인공심장 삽입 수술은 당시 전 세계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향후 인공심장의 본격적인 임상 적용에 큰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냉장고만한 외부 공기 구동장치에 줄곧 매여 있어야만 하는 결정적인 단점과 인공심장에서 발생하는 혈전 등의 치명적인 합병증 등이 노출되면서 곧 초기의 열기가 식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외부 구동장치에 매이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작동이 가능한 체내 완전삽입 인공심장을 만들 목적으로 새로운 전기식 인공심장의 개발이 미국을 선두주자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추진됐습니다. 그리고 이의 결과물로 임상실험을 위한 최종 심사까지 통과한 것이 바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비오코 인공심장입니다. 그러나 이 제품 역시 아직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 현재 일부 한정된 조건에 해당되는 환자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흥미로운 설정은 중국 갱단이 체브에게서 심장을 도적질 해가면서 그의 생명을 어떻게든 유지시켜 줄 목적으로 인공심장을 대신 넣어 준 것입니다. 실제 아비오코 인공심장은 매우 고가의 의료장비로 체브에게 이런 시술을 해 주는 행위는, 남의 장기를 강탈해 가는 그야말로 비인도적인 처사 중에서 한 줄기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 자못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이 영화는 사실 수술 장면이나 인공심장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 등에서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한 예로 인공심장 충전 후 체브가 순간 마치 슈퍼맨처럼 변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실 인공심장은 자연 심장처럼 우리 몸의 기본적인 순환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그 기능이지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비논리성에 대해 별다르게 고민하지 않고 간명하게 영화적 재미거리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B급/C급 영화들의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인공심장이라는 첨단 의료제품을 이용하여 독특한 발상의 영화를 제작한데는 관련 전문의로서 애정 어린 관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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