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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결과적으로는 국내외적으로 흥행에서나 평가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으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면 뜻밖의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트립(매튜 맥커너히 분)은 미국 볼티모어 시에서 보트 중개상으로 일하고 있는 35살 된 남자입니다. 그는 준수한 외모에 재치 있는 말솜씨, 그리고 운동으로 다져진 멋진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누구 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몸과 마음이 편한 부모님 집을 굳이 떠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 두 사람도 이런 저런 이유로 모두 부모님 집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그들 자신의 생활을 합리화하며 나름대로 즐겁게들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트립이 여자를 사귀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호감을 느꼈던 여자들도 그가 아직까지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실망하여 금방 헤어지게 되는 일들이 반복됐습니다.
이런 그를 보고 아버지 알(테리 브래드쇼 분)과 어머니 수(캐시 베이츠 분)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집에서 내보내려고 하나 여의치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옆집 부부에게서 성공적으로 아들을 내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자극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트립을 독립시키기 위해 관련 전문가와 계약을 맺습니다.
이 방면의 전문가이자 자기 자신도 아직 미혼인 폴라(사라 제시카 파커 분)는 알과 수에게 남자가 집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기 존중감의 결여’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앞으로 그녀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트립을 자신에게 빠지게 만들어 결국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힙니다(사진 2). 폴라는 예정된 수순대로 트립에게 접근하여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그를 변화시키기 위한 작전을 하나하나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만남이 잦아질수록 폴라는 트립이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자기 존중감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 관계도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만 그는 여자와의 지속적인 오랜 만남을 꺼려하여,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종의 구실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가운데 둘 사이의 감정은 점점 발전하여, 마침내 폴라는 트립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즈음 폴라는 트립이 사실은 전에 사귀던 애 딸린 여자와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하던 사이였는데, 그 여자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조카라고 소개하며 함께 살고 있는 소년이 사실은 죽은 옛 애인의 애라는 사실도 듣게 된다. 사실 이 일 때문에 트립은 그 후 다른 여자와의 만남을 힘들어했던 것이었고, 그의 부모도 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자 일시적으로 그와 함께 지내고자 한 것이 그만 세월이 흐르고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 트립 역시 폴라가 사실은 부모님의 돈을 받고 자신을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트립은 충격을 받고 폴라에게 당장 헤어질 것을 요구합니다.
이후 둘은 현실에 낙담한 가운데 각각의 환경에서 어쩔 수없이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친구들의 적극적인 두 사람 결합 작전(?)의 결과 결국 다시 사랑을 되찾으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을 기본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사실 오늘날의 우리 사회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012년 6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삼사십대 자녀 인구가 지난 2000년 25만3천명에서, 2010년 48만4천명으로 91.4%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십년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보다 구체적으로는 60세 이상 부모가 자녀와 같이 사는 이유로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이 불가능하거나,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39.5%로, 부모의 독립이 불가능해서라는 이유 32.3%보다 더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2-30년전 만 하더라도 특히 남자의 경우 서른이 넘어서까지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는 부모를 돌보는 경우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더구나 영화의 무대가 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대학생 이후부터는 집에서 나와 사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고 영화에서처럼 서른이 넘어서까지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는 의학적으로 상당히 흥미 있는 장면이 하나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폴라의 룸메이트로 나오는 키트(조이 데이셔넬 분)는 집 창밖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지저겨 대는 흉내지바뀌(mocking bird)라는 새에 매우 신경질적이 됩니다(사진 3). 마침내 인내의 한계에 달한 그녀는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 에이스(저스틴 바사 분)의 도움을 받아 그의 비비총으로 새를 위협하여 쫓아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총알에 맞은 새는 충격으로 자칫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에 혼비백산한 두 사람은 급히 응급소생술을 시행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재미있는 장면이 바로 에이스가 새에게 시행하는 인공호흡법입니다. 즉 구강 대 구강 소생술이 아닌 <구강 대 부리 소생술(mouth-to-beak resuscitation)>을 심장마사지와 함께 시행하게 된 것입니다(사진 4, 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문득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과연 이런 응급호흡법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며 그 효과는 있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실제 이 영화 촬영 이전에도 물에 빠져 숨이 멎은 닭을 인공호흡으로 살렸다는 등의 기사는 꾸준히 있어 왔지만, 그 진위를 정확히 가릴 증거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2011년 7월 미국에서 한 수의사가 야생 독수리를 대상으로 시행한 구강 대 부리 소생법의 성공 사례가 동영상으로 공개되면서 매스컴의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의학적으로는 동물의 종류에 관계없이 기도를 통해 외부에서 숨을 불어 넣어 흉부를 팽창시킬 수만 있다면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법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여기서 구강 대 구강 호흡법에 대해 또 다른 흥미 있는 사실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역사상 이에 대한 첫 기술이 성경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열왕기 하편에는 엘리사(Elisha)란 선지자가 수넴이란 지방에서 그에게 인을 베풀어준 한 여인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녀가 오랫동안 갖지 못하던 애기를 갖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법에 대한 기록은 바로 그 애기가 소년이 된 후 갑자기 죽게 된 4 장 18 절에서 37 절 사이에서 기술되고 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는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공동번역 성서 일부를 발췌해 봅니다.
<< 엘리사는 집안에 들어가 죽은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엘리사는 방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방안에는 둘 뿐이었다 그는 야훼께 기도드리고 나서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입을 아이의 입에 자기의 눈을 아이의 눈에, 자기의 손을 아이의 손에 포개었다. 이렇게 아이 위에 엎드리자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였다. 엘리사는 일어나서 방안을 이리로 한번, 저리로 한번 걷고 나서 다시 침대에 올라가 아이 위에 엎드렸다 그러기를 일곱 번 거듭하자 아이가 재채기를 하면서 눈을 떴다. >>
물론 여기서 엘리사가 소년의 입에 그의 입을 갖다 댔다는 표현이 과연 오늘날의 구강 대 구강호흡법을 의미하느냐는 의학적으로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그 소년이 사망하고 나서 소생술을 시행하기까지의 시간간격이 너무 길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그의 입을 소년의 입에다 갖다 대었을 때 동시에 그의 양손도 소년의 양손에 갖다 대었다는 표현도 현대적 의미의 구강 대 구강 호홉법과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구강 대 구강호흡법은 시술자의 한손으로 환자의 콧구멍을 막아 주어야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표현들이 그렇듯이,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여기에 대한 판단은 목자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어쨌든 여러분들도 혹시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어 가고 있는 불쌍한 새를 발견하게 될 때 이 영화를 한번 떠올려 보심은 어떨지요? 물론 그럴 일이 생길 확률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과연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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