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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툼스톤]과 폐결핵
  • 김원곤 교수의 영화속 의학이야기 2013/01/02
  • 영화 [툼스톤(Tombstone)]은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1993년 작품입니다(사진 1). 이 영화는 1881년 실제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세간에 로 널리 알려진 실화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제작사 : Cinergi Pictures Entertainment Inc., Hollywood Pictures)




    [OK 목장의 결투]는 1881년 10월 26일 애리조나주 툼스톤이라는 은광 마을에서 총잡이 닥 할리데이의 지원을 받은 어프 3형제와 카우보이(the Cowboys)로 불리던 무법자 일당들 간에 벌어 진 총격전을 일컫는 것으로, 결국 카우보이 측의 3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결투 후 카우보이 측의 보복으로 어프 3형제 중 모건이 살해당하고 버질이 부상을 입자, 주인공 격인 와이어트 어프는 친구 닥 할리데이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프의 피의 복수전(Earp Vendetta Ride)’이라고 불리는 철저한 복수를 합니다. 

    미국 서부 시대에서 벌어진 일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간주되는 이 결투는 그 유명세 때문에 이 영화 이전에도 이미 1946년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57년 존 스터지스 감독의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등으로 영화화 된 바 있습니다.       

    사건의 무대가 된 툼스톤 마을이 묘비(툼스톤, tombstone)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사진 2). 이 마을은 1877년 광산 탐사가 에드 시펠린(Ed Schiefelin)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그가 이곳에서 금광을 찾아 나서자 주위 사람들이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으며 결국 그곳에 자신의 묘비(tombstone)만 남기고 끝날 것이라고 놀렸지만 그는 은광을 찾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자 시펠린은 자기를 비웃었던 사람들을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의미에서 이 마을에 묘비(툼스톤)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시펠린의 발견 이후 툼스톤에는 은광 붐이 일어나 1881년까지 약 7,000명의 탐광자가 몰려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 이때 마을에 몰려 든 여러 모험가들과 불한당들이 마을의 질서와 법을 무시하고 무법천지를 이루면서 서로간의 갈등 끝에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툼스톤의 이러한 번성기는 노동쟁의와 함께 은광이 물에 잠기고 은값까지 하락하자 1890년 은광이 폐광되면서 끝나고 맙니다. 툼스톤은 1962년에 미국 국립사적지로 선정되면서 지금까지 를 테마로 한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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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툼스톤에서 전직 보안관인 외이어트 어프(커트 러셀 분)는 은퇴 후 흩어져 있던 두 형 버질(샘 엘리오트 분), 모건(빌 팍스톤 분)과 함께 작지만 새롭게 번성하는 광산 마을인 툼스톤에 정착합니다. 와이어프는 그곳에서 친구인 닥 할리데이(발 킬머 분)를 만납니다(사진 3). 치과의사 출신의 도박사이자 유능한 총잡이인 닥은 지병인 폐결핵을 치료할 목적으로 건조한 기후를 가진 애리조나를 택하여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툼스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마을에 몰려 든 광산가들과 각종 불한당들이 마을의 질서와 법을 무시하고 무법천지를 이루면서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빨간 띠를 허리에 두르고 다니는 카우보이라는 무법자 일당은 컬리 빌리를 두목으로 각종 행패를 부리면서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와이어트를 중심으로 한 어프 형제들은 살롱에서 새롭게 도박 관련 사업을 하며 돈을 벌고자 하는 데 이 과정에서 카우보이 일당과 첫 조우를 합니다. 특히 닥과 카우보이 일당의 최고 총잡이인 조니 링고(마이클 빈 분)는 서로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본능적인 적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컬리 빌리가 아편굴에서 나온 후 까닭 없이 보안관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본 와이어트가 컬리 빌리를 잡아 사법 당국에 넘기자, 카우보이 일당과 어프 형제들 간의 반목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컬리 빌리는 어처구니없게도 증거 부족이란 이유로 석방됩니다. 

    이런 와중에 극심한 혼란을 겪는 툼스톤 마을를 외면하지 못한 어프 형제의 맏형 버질은 보안관직을 맡고 누구든지 마을 내에서는 일체 총기를 휴대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발표합니다. 이 조처로 카우보이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고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마침내 1881년 10월 26일 오후 3시경 유명한 OK목장의 벌어지게 됩니다(사진 4). 



    어프 3형제와 닥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카우보이 일당과 마주한 약 30초간의 짧은 총격전에서 일당 중 3명을 죽입니다.  그러니 이 후 카우보이 일당에게 모건이 살해당하고 버질은 왼쪽 팔을 잃는 보복을 당합니다. 와이어트는 버질과 다른 가족들을 기차로 떠내 보내고 닥과 함께 카우보이들의 소탕에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OK  목장의 결투에 이은 유명한 ‘어프의 피의 복수전(Earp Vendetta Ride)’ 입니다(사진 5). 



    마침내 컬리 빌리까지 제거한 와이어트는 새로 일당의 두목이 된 조니 링고에게 1:1 결투 신청을 받습니다. 총 솜씨로는 와이어트가 링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닥은 폐결핵이 심각하게 진행된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와이어트 몰래 링고와의 결투 장소에 먼저 나갑니다. 그리고 링고와의 결투 끝에 결국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닥은 콜라라도주의 한 요양소에 입원한 상태에서 폐결핵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영화에서는 그의 생전에 와이어트가 닥을 면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와이어트는 닥 사망 수개월 후에 비로소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와이어트는 그가 사랑했던 유랑극단 배우 출신의 조세핀을 찾아가 만나 게 되는데,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 192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죽었다는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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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툼스톤의 주인공은 엄연히 와이어트 어프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꼽자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닥 할리데이를 선택할 것입니다. 영화에서 닥 할리데이는 중증 결핵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친구 와이어트를 도와 무법자 일당을 무찌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인 발 킬머는 닥 할리데이를 연기하며 창백한 얼굴로 결핵 환자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닥을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사진 6). 사실 19세기 당시를 돌이켜 보면 결핵은 비록 치명적인 병이긴 하였지만 그 만성적인 경과와 환자의 혈색을 창백하게 만드는 효과로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낭만적인 병(romantic disease)’ 으로까지 간주된 적도 있었습니다. 결핵에 걸리면 감성과 영감이 증가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고, 일부 젊은 부유층 처녀들은 일부러 결핵 환자처럼 창백하게 보이게끔 화장을 하여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당시의 분위기는 유명한 영국의 대시인 바이런(1788-1824)의 ‘나는 결핵에 걸려 죽고 싶다.’ 라는 말에서도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바이런의 이 말은 결핵이 예술가들의 병으로까지 취급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 결핵에 대한 인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결핵에 걸리면 얼굴이 예뻐진다는 이야기는 옛 의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핵은 엄연히 치명적인 병으로, 당시 많은 젊은 사람들의 목숨을 속절없이 빼앗아 가는 현실에 사람들은 안타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1932년에 조선 최초로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한 크리스마스 실 판매에 즈음하여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1932년 12월 11일자-2012년 12월 12일 기사에서 재인용) 중 다음 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페병으로 말미아마서 죽는 사람의 수효는 세일 수 업스리만치 만흐니… 조선의 젊은 장래가 유망한 남녀 청년도 이 병으로써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만은가. 이를 절실이 늣긴 해주 구세료양원장 하락(賀樂) 박사는 금년부터 페결핵을 철저이 퇴치하고자 하야 '크리스마쓰 씰'을 선전판매하게 되엿다….'         

    어쨌든 O.K. 목장의 결투가 일어난 1881년에는 결핵에 대한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을 때였습니다. 프러시아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한 것이 1882년이고, 이소니아지드(isoniazid)라는 첫 경구용 항결핵치료제가 등장한 것이 그로부터 한참후인 1952년이니까 당시의 실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1880년에 조사된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인구 1000명 당 1년 동안 백인은 3.3명이 흑인은 6.0명이 사망할 정도였습니다. 

    닥 할리데이도 당시에 결핵 치료를 위해 그나마 추천되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건조한 기후를 가진 장소를 찾아 툼스톤까지 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닥은 별다른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콜라라도주의 한 요양소에서 폐결핵으로 불과 36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사진 7). 



    결핵은 효과적인 항결핵치료제의 소개로 한때 국내외적으로 완전 퇴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까지 갖게 하였으나, 1980년대부터 항결핵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이 등장하면서 다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국내에서도 농촌 지역의 경우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여전히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효과적인 결핵의 예방과 치료에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1년 결핵감염으로 신고 된 환자의 수는 3만9557명으로 2010년에 비해 3000여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전까지는 환자 감소세가 크게 둔화되는 정도의 경향을 보이다가 2008년부터는 결핵 환자 발병률이 오히려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결핵은 아직 사라진 병이 아닙니다. 결핵은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원곤 | 흉부외과

     

    전공분야 : 정맥외과(하지정맥류), 다한증

     

    서울대학교 흉부외과 교수로 정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심혈관외과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의 달인' 이며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몸짱' 교수이기도 합니다. 저서로는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흥미있는 심장병 치료의 역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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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툼스톤]과 폐결핵
김원곤 교수의 영화속 의학이야기 2013/01/02

영화 [툼스톤(Tombstone)]은 조지 P. 코스마토스 감독의 1993년 작품입니다(사진 1). 이 영화는 1881년 실제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세간에 로 널리 알려진 실화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제작사 : Cinergi Pictures Entertainment Inc., Hollywood Pictures)




[OK 목장의 결투]는 1881년 10월 26일 애리조나주 툼스톤이라는 은광 마을에서 총잡이 닥 할리데이의 지원을 받은 어프 3형제와 카우보이(the Cowboys)로 불리던 무법자 일당들 간에 벌어 진 총격전을 일컫는 것으로, 결국 카우보이 측의 3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이 결투 후 카우보이 측의 보복으로 어프 3형제 중 모건이 살해당하고 버질이 부상을 입자, 주인공 격인 와이어트 어프는 친구 닥 할리데이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프의 피의 복수전(Earp Vendetta Ride)’이라고 불리는 철저한 복수를 합니다. 

미국 서부 시대에서 벌어진 일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간주되는 이 결투는 그 유명세 때문에 이 영화 이전에도 이미 1946년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57년 존 스터지스 감독의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 등으로 영화화 된 바 있습니다.       

사건의 무대가 된 툼스톤 마을이 묘비(툼스톤, tombstone)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사진 2). 이 마을은 1877년 광산 탐사가 에드 시펠린(Ed Schiefelin)에 의해 조성되었는데, 그가 이곳에서 금광을 찾아 나서자 주위 사람들이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으며 결국 그곳에 자신의 묘비(tombstone)만 남기고 끝날 것이라고 놀렸지만 그는 은광을 찾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자 시펠린은 자기를 비웃었던 사람들을 오히려 비아냥거리는 의미에서 이 마을에 묘비(툼스톤)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시펠린의 발견 이후 툼스톤에는 은광 붐이 일어나 1881년까지 약 7,000명의 탐광자가 몰려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 이때 마을에 몰려 든 여러 모험가들과 불한당들이 마을의 질서와 법을 무시하고 무법천지를 이루면서 서로간의 갈등 끝에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툼스톤의 이러한 번성기는 노동쟁의와 함께 은광이 물에 잠기고 은값까지 하락하자 1890년 은광이 폐광되면서 끝나고 맙니다. 툼스톤은 1962년에 미국 국립사적지로 선정되면서 지금까지 를 테마로 한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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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툼스톤에서 전직 보안관인 외이어트 어프(커트 러셀 분)는 은퇴 후 흩어져 있던 두 형 버질(샘 엘리오트 분), 모건(빌 팍스톤 분)과 함께 작지만 새롭게 번성하는 광산 마을인 툼스톤에 정착합니다. 와이어프는 그곳에서 친구인 닥 할리데이(발 킬머 분)를 만납니다(사진 3). 치과의사 출신의 도박사이자 유능한 총잡이인 닥은 지병인 폐결핵을 치료할 목적으로 건조한 기후를 가진 애리조나를 택하여 이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툼스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마을에 몰려 든 광산가들과 각종 불한당들이 마을의 질서와 법을 무시하고 무법천지를 이루면서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빨간 띠를 허리에 두르고 다니는 카우보이라는 무법자 일당은 컬리 빌리를 두목으로 각종 행패를 부리면서 마을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와이어트를 중심으로 한 어프 형제들은 살롱에서 새롭게 도박 관련 사업을 하며 돈을 벌고자 하는 데 이 과정에서 카우보이 일당과 첫 조우를 합니다. 특히 닥과 카우보이 일당의 최고 총잡이인 조니 링고(마이클 빈 분)는 서로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본능적인 적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컬리 빌리가 아편굴에서 나온 후 까닭 없이 보안관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본 와이어트가 컬리 빌리를 잡아 사법 당국에 넘기자, 카우보이 일당과 어프 형제들 간의 반목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컬리 빌리는 어처구니없게도 증거 부족이란 이유로 석방됩니다. 

이런 와중에 극심한 혼란을 겪는 툼스톤 마을를 외면하지 못한 어프 형제의 맏형 버질은 보안관직을 맡고 누구든지 마을 내에서는 일체 총기를 휴대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발표합니다. 이 조처로 카우보이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고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마침내 1881년 10월 26일 오후 3시경 유명한 OK목장의 벌어지게 됩니다(사진 4). 



어프 3형제와 닥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카우보이 일당과 마주한 약 30초간의 짧은 총격전에서 일당 중 3명을 죽입니다.  그러니 이 후 카우보이 일당에게 모건이 살해당하고 버질은 왼쪽 팔을 잃는 보복을 당합니다. 와이어트는 버질과 다른 가족들을 기차로 떠내 보내고 닥과 함께 카우보이들의 소탕에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OK  목장의 결투에 이은 유명한 ‘어프의 피의 복수전(Earp Vendetta Ride)’ 입니다(사진 5). 



마침내 컬리 빌리까지 제거한 와이어트는 새로 일당의 두목이 된 조니 링고에게 1:1 결투 신청을 받습니다. 총 솜씨로는 와이어트가 링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닥은 폐결핵이 심각하게 진행된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와이어트 몰래 링고와의 결투 장소에 먼저 나갑니다. 그리고 링고와의 결투 끝에 결국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닥은 콜라라도주의 한 요양소에 입원한 상태에서 폐결핵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합니다. 영화에서는 그의 생전에 와이어트가 닥을 면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와이어트는 닥 사망 수개월 후에 비로소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와이어트는 그가 사랑했던 유랑극단 배우 출신의 조세핀을 찾아가 만나 게 되는데,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 192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죽었다는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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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툼스톤의 주인공은 엄연히 와이어트 어프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꼽자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닥 할리데이를 선택할 것입니다. 영화에서 닥 할리데이는 중증 결핵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친구 와이어트를 도와 무법자 일당을 무찌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인 발 킬머는 닥 할리데이를 연기하며 창백한 얼굴로 결핵 환자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닥을 더없이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사진 6). 사실 19세기 당시를 돌이켜 보면 결핵은 비록 치명적인 병이긴 하였지만 그 만성적인 경과와 환자의 혈색을 창백하게 만드는 효과로 일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낭만적인 병(romantic disease)’ 으로까지 간주된 적도 있었습니다. 결핵에 걸리면 감성과 영감이 증가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고, 일부 젊은 부유층 처녀들은 일부러 결핵 환자처럼 창백하게 보이게끔 화장을 하여 최대한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당시의 분위기는 유명한 영국의 대시인 바이런(1788-1824)의 ‘나는 결핵에 걸려 죽고 싶다.’ 라는 말에서도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바이런의 이 말은 결핵이 예술가들의 병으로까지 취급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 결핵에 대한 인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결핵에 걸리면 얼굴이 예뻐진다는 이야기는 옛 의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인식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핵은 엄연히 치명적인 병으로, 당시 많은 젊은 사람들의 목숨을 속절없이 빼앗아 가는 현실에 사람들은 안타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1932년에 조선 최초로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한 크리스마스 실 판매에 즈음하여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1932년 12월 11일자-2012년 12월 12일 기사에서 재인용) 중 다음 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페병으로 말미아마서 죽는 사람의 수효는 세일 수 업스리만치 만흐니… 조선의 젊은 장래가 유망한 남녀 청년도 이 병으로써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만은가. 이를 절실이 늣긴 해주 구세료양원장 하락(賀樂) 박사는 금년부터 페결핵을 철저이 퇴치하고자 하야 '크리스마쓰 씰'을 선전판매하게 되엿다….'         

어쨌든 O.K. 목장의 결투가 일어난 1881년에는 결핵에 대한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을 때였습니다. 프러시아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한 것이 1882년이고, 이소니아지드(isoniazid)라는 첫 경구용 항결핵치료제가 등장한 것이 그로부터 한참후인 1952년이니까 당시의 실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1880년에 조사된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인구 1000명 당 1년 동안 백인은 3.3명이 흑인은 6.0명이 사망할 정도였습니다. 

닥 할리데이도 당시에 결핵 치료를 위해 그나마 추천되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건조한 기후를 가진 장소를 찾아 툼스톤까지 흘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닥은 별다른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콜라라도주의 한 요양소에서 폐결핵으로 불과 36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사진 7). 



결핵은 효과적인 항결핵치료제의 소개로 한때 국내외적으로 완전 퇴치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까지 갖게 하였으나, 1980년대부터 항결핵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이 등장하면서 다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국내에서도 농촌 지역의 경우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여전히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효과적인 결핵의 예방과 치료에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1년 결핵감염으로 신고 된 환자의 수는 3만9557명으로 2010년에 비해 3000여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전까지는 환자 감소세가 크게 둔화되는 정도의 경향을 보이다가 2008년부터는 결핵 환자 발병률이 오히려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결핵은 아직 사라진 병이 아닙니다. 결핵은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원곤 | 흉부외과

 

전공분야 : 정맥외과(하지정맥류), 다한증

 

서울대학교 흉부외과 교수로 정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심혈관외과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의 달인' 이며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몸짱' 교수이기도 합니다. 저서로는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흥미있는 심장병 치료의 역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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