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아 아프지마]“1등 4명 … 난 그 다음이니 2등”
- 스트레스클리닉 2011/09/24
, 본 기사는 중앙일보 9월 24일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애 때문에 걱정이에요. 애가 영 승부욕이 없고 흐리멍텅해요.” 자녀 양육 스트레스로 클리닉을 찾은 30대 여성분이 있다. 중3 아들과 시험 성적 순위 얘기를 하다 아들은 끝까지 2등이라 우기고 본인은 5등이라 맞서다 대판 싸웠다는 것이다. 1등이 네 명이면 당연히 5등인 것을 끝까지 2등이라 우기는 아들이 너무 미웠단다. 순위를 명확히 하고 반성해야 더 발전이 있을 텐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아들 태도가 못마땅하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사나 걱정된다고 했다. 이렇게 대답해줬다. “경쟁사회에서 걱정되시는 것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행복 유전자는 어머님보다 아드님한테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요즘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경쟁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경쟁에 지치고 지친 우리인데 쉬는 시간에 또 다른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고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쟁쟁한 가수들, 수백 번 라이브 무대 경험을 가진 그들이 무대에서 떨고 순위 결정에 따라 얼굴 표정이 죽었다 살았다 한다.
치열한 경쟁의 대리전을 바라볼 때 내 안에 있는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더 나아가 감동까지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경쟁의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느껴질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편화하며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만의 리그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미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조차 일등에 대한 집착과 연주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우리에게 인생의 본질적 고민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객관적 성공과 주관적 행복 사이의 영원한 핑퐁게임, 중요한 인생의 주제다.
사회비교정보이론(Social comparison information theory)이란 게 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자기만족의 가치를 주관적 기준에 두느냐 아니면 주관 외부의 가치에 두는냐 하는 것이다. 주관적 기준에 두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기능적 수행도 더 좋은 것으로 돼 있다. 외부의 경쟁적 가치를 자신의 가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그룹은 수학시험 문제를 풀게 했을 때 옆에 자신보다 속도가 느린 사람이 있을 때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자신보다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이 있을 때는 문제 푸는 속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주관적 가치를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그룹은 옆에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을 두었을 때 오히려 풀이 속도가 빨라지는 결과를 보였다. 이런 경향은 상당 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되나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앞서 말한 아들이 어머니보다 유전적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본인은 주변 평가와 상관없이 행복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골프가 싫다. 치고 나올 때 기분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치지 않으려 한다. 주말 골퍼 중 기분 좋게 골프장을 나서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열에 하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골프장을 다시 찾게 하는 매력이 순위와 점수에 대한 경쟁에 있지 않나 싶다. 욕심을 버리고 몸에 힘을 빼야 좋은 샷이 나오는 게 골프다. 순위에 대한 욕심을 잔뜩 품고 있는데 역으로 힘을 빼야 하다니 보통 도가 아니다. 올해 몇몇 여자 프로 골퍼의 멘털 트레이닝을 맡게 됐다. 프로 골퍼들의 실력은 연속해 우승할 사람이 없을 만큼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 있다. 역설적으로 얼마나 욕심을 버리고 경기를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 우승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경기 자체를 즐기자는 멘털 트레이닝 후 성적이 향상되고 있던 선수에게 한번 우승을 노려 보자고 독려했더니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 참 멘털 트레이너로서 부끄럽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지난주 ‘나는 가수다’에선 뭔가 화끈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다 보니 항상 긴장하게 되고 결국 순위가 좋지 않았던 가수가 일등을 했다. 그 스스로도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버리고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노래에 임했다고 했다. 객관적 순위 가치에서 자유로워지고 본능적 가치, 즉 철저한 주관적 행복에 의지해 연주를 즐겼을 때 최상의 퍼포먼스가 나왔고 객관적 가치마저 일등이 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항상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 가수의 인터뷰가 의미심장하다. “일등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무대에 더 몰입하고 즐기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 외부 시각과 순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고 그래서는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행복은 내 주관에 있다.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의 연주를 즐겨 보자. 객관적 순위를 넘어선 심리적 승리가 그 안에 존재한다.
윤대현 |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쳤습니다.
KBS <명작 스캔들>,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BS <60분 부모>등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현재 KBS 라디오 <건강플러스 이충헌입니다><이금희의 사랑하기 좋은날>, MBC 에브리원 <베스트 닥터쇼>, CBS <김미화의 여러분> 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마음 아프지마], [나는 초콜릿과 이별 중이다](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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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아 아프지마]“1등 4명 … 난 그 다음이니 2등” |
| 스트레스클리닉 2011/09/24 |
, 본 기사는 중앙일보 9월 24일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애 때문에 걱정이에요. 애가 영 승부욕이 없고 흐리멍텅해요.” 자녀 양육 스트레스로 클리닉을 찾은 30대 여성분이 있다. 중3 아들과 시험 성적 순위 얘기를 하다 아들은 끝까지 2등이라 우기고 본인은 5등이라 맞서다 대판 싸웠다는 것이다. 1등이 네 명이면 당연히 5등인 것을 끝까지 2등이라 우기는 아들이 너무 미웠단다. 순위를 명확히 하고 반성해야 더 발전이 있을 텐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아들 태도가 못마땅하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사나 걱정된다고 했다. 이렇게 대답해줬다. “경쟁사회에서 걱정되시는 것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행복 유전자는 어머님보다 아드님한테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요즘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경쟁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경쟁에 지치고 지친 우리인데 쉬는 시간에 또 다른 치열한 경쟁을 지켜보고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쟁쟁한 가수들, 수백 번 라이브 무대 경험을 가진 그들이 무대에서 떨고 순위 결정에 따라 얼굴 표정이 죽었다 살았다 한다.
치열한 경쟁의 대리전을 바라볼 때 내 안에 있는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더 나아가 감동까지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경쟁의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느껴질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편화하며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만의 리그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미 최정상에 있는 사람들조차 일등에 대한 집착과 연주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우리에게 인생의 본질적 고민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객관적 성공과 주관적 행복 사이의 영원한 핑퐁게임, 중요한 인생의 주제다.
사회비교정보이론(Social comparison information theory)이란 게 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자기만족의 가치를 주관적 기준에 두느냐 아니면 주관 외부의 가치에 두는냐 하는 것이다. 주관적 기준에 두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기능적 수행도 더 좋은 것으로 돼 있다. 외부의 경쟁적 가치를 자신의 가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그룹은 수학시험 문제를 풀게 했을 때 옆에 자신보다 속도가 느린 사람이 있을 때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자신보다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이 있을 때는 문제 푸는 속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주관적 가치를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그룹은 옆에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을 두었을 때 오히려 풀이 속도가 빨라지는 결과를 보였다. 이런 경향은 상당 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되나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앞서 말한 아들이 어머니보다 유전적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본인은 주변 평가와 상관없이 행복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골프가 싫다. 치고 나올 때 기분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치지 않으려 한다. 주말 골퍼 중 기분 좋게 골프장을 나서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열에 하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골프장을 다시 찾게 하는 매력이 순위와 점수에 대한 경쟁에 있지 않나 싶다. 욕심을 버리고 몸에 힘을 빼야 좋은 샷이 나오는 게 골프다. 순위에 대한 욕심을 잔뜩 품고 있는데 역으로 힘을 빼야 하다니 보통 도가 아니다. 올해 몇몇 여자 프로 골퍼의 멘털 트레이닝을 맡게 됐다. 프로 골퍼들의 실력은 연속해 우승할 사람이 없을 만큼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 있다. 역설적으로 얼마나 욕심을 버리고 경기를 즐길 수 있느냐에 따라 우승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경기 자체를 즐기자는 멘털 트레이닝 후 성적이 향상되고 있던 선수에게 한번 우승을 노려 보자고 독려했더니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 참 멘털 트레이너로서 부끄럽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지난주 ‘나는 가수다’에선 뭔가 화끈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다 보니 항상 긴장하게 되고 결국 순위가 좋지 않았던 가수가 일등을 했다. 그 스스로도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버리고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노래에 임했다고 했다. 객관적 순위 가치에서 자유로워지고 본능적 가치, 즉 철저한 주관적 행복에 의지해 연주를 즐겼을 때 최상의 퍼포먼스가 나왔고 객관적 가치마저 일등이 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항상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 가수의 인터뷰가 의미심장하다. “일등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무대에 더 몰입하고 즐기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 외부 시각과 순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고 그래서는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행복은 내 주관에 있다.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의 연주를 즐겨 보자. 객관적 순위를 넘어선 심리적 승리가 그 안에 존재한다.
윤대현 |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쳤습니다.
KBS <명작 스캔들>,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BS <60분 부모>등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현재 KBS 라디오 <건강플러스 이충헌입니다><이금희의 사랑하기 좋은날>, MBC 에브리원 <베스트 닥터쇼>, CBS <김미화의 여러분> 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마음 아프지마], [나는 초콜릿과 이별 중이다](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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