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중앙일보 11월 5일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모범생’ 우울증이 치료하기 더 어렵다.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40대 그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사회적 위치에 올랐는데 갑자기 불안과 의욕 저하가 찾아왔다. 다른 병원에서 몇 달간 치료를 받았는데 효과가 없다며 필자의 클리닉을 찾아왔다. 옳거니 잘 치료해서 명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열심히 치료한 지 일주일 후, 좋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역시 난 명의야. 그런데 그것도 잠깐, 다음 날부터 더 불안해하고 더 힘들어한다.
“당신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병이 나아 다시 ‘모범적’으로 사는 게 싫은가 봐요.”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는데 웬걸 환자가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제 속에 좋아지는 걸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호전되니 좋으면서도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 싫고 불안했어요.”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만나는 환자는 대부분 ‘모범생’이다. 성실하고 의지력도 강하고 남을 배려하는 감수성도 풍부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다. 자기 감정을 누르고 남을 생각하고, 하기 싫어도 옳은 일이라면 의지로 실천하다 보니 안 그럴 수 있겠나.
그래서 난 환자들에게 “모범생인 당신을 ‘날라리’로 만드는 게 내 일”이라고 말한다. 모범생 병인 환자에게 의사까지 모범적인 것을 요구하면 환자는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모범생의 심리적 기전은 동조다. 대다수의 의견 또는 사회적 규범과 자신의 의견이 다를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이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자신의 생각을 다수의 생각에 맞추는 것, 곧 동조다. 동조를 잘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 사회성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부딪히지 말고 둥글게 살라’는 어르신들 말씀에도 동조의 심리가 있다.
하지만 동조라는 사회적 외면은 내면의 속 사람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연구가 있다. 먼저 아무 정보 없이 청소년들에게 새로 나온 음악을 들려주고 좋아하는 곡을 선택하게 했다. 이 경우 쾌락보상시스템, 즉 본능의 뇌에 속한 감성 시스템의 뇌 활동도를 높이는 노래를 선택했다. 본능적 감성에 호소한 노래를 선택한 것이다. 다음은 음악들의 판매 순위를 정보로 주고 선택하게 했다. 그러자 쾌락 중추보다는 동조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동도를 높인 곡들, 즉 판매 순위가 높은 곡들을 선택했다. 개인적인 감성 취향보다 사회적 동조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동조로 다수에서 떨어지는 외톨이 불안은 없어질 수 있으나 자기만의 가치와 행복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저항은 동조에 대한 심리적 방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보면 심리적 저항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고배를 든 여당 후보는 경험이 많아 보이는 노숙한 남자 후보가 아니었다. 여성의 섬세함, 따뜻함을 원했던 것일까. 통상적인 이미지는 아니라는 점에서 이건 동조에 대한 저항이다. 당선된 야권 후보는 아예 정당 정치인이 아니었다. 우리 국민들이 기존 소프트웨어에 더 이상 동조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내면적 저항의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성적 저항이다. 이렇게 소수의 저항이 뭉쳐 대다수가 되면 그것은 새로운 사회 움직임의 소프트웨어가 된다.
"자살 예방은 왜 해야 하는 거예요?” 필자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자살예방협회와 공동으로 자살예방 캠페인 ‘셀라비1004’를 진행 중인 중앙일보의 한 여기자가 전화 인터뷰에서 던진 질문이다. 웃음이 나왔다. 협회에선 ‘자살은 무조건 안 된다’는 명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저항 심리는 자살에까지 이르러 있다. 어찌 보면 자살은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취하는 극단적 병적 저항이다. 동조에 대한 생물학적 네트워크 해체다. 문제는 대부분의 자살 시도자들이 충동적이고 지나고 나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는 데 있다. 대부분 후회를 하는 행동이기에 막아야 하는 것이다.
셀라비 는 ‘이것이 인생’이라는 뜻이다. 인생은 핑크빛이고 그렇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저항하자는 이야기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나 그 안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것을 함께 나누자는 것, 셀라비인 것이다.
저항은 본능이다. 삶의 쾌락을 느끼고자 하는, 독립의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하는 본능적 반응이다.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드는 것도 그들의 본능의 저항이다. 독립된 개체로 성장하고자 하는 에너지의 분출인 것이다. ‘버릇없다, 요즘 애들 안 돼’라는 이성적 관념으로 동조만을 강조할 수 없는 이유다. 인류의 역사를 봐도 독립과 자유라는 본능적 쾌락을 향한 저항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하다.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보자. 꼭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항상 예스맨으로 살아야 하는가. 흔히 하는 말로 까칠한 사람이 돼보자. 본능적 저항심, 우리의 건강한 야수성을 잃지 말자.
윤대현 |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쳤습니다.
KBS <명작 스캔들>,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BS <60분 부모>등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현재 KBS 라디오 <건강플러스 이충헌입니다><이금희의 사랑하기 좋은날>, MBC 에브리원 <베스트 닥터쇼>, CBS <김미화의 여러분> 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마음 아프지마], [나는 초콜릿과 이별 중이다](공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