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은 1962년 제 1편 살인번호가 소개된 이래 무려 5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전설적인 첩보 스릴러입니다. 007 시리즈는 2012년의 스카이폴까지 현재 공식적으로는 23편까지 나와 있는데 이러한 기록은 아마 앞으로도 영화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영국정보국 M16 소속의 첩보원 007이 만들어진 것은 영국 작가 이안 플레밍(Ian Fleming, 1908-1964)에 의해서였습니다. 그의 소설에 근거하여 지금까지 만들어진 007 시리즈 중 [리빙데이라이트(Living Daylight)]는 존 글렌 감독의 1987년 작품으로 007 시리즈 중 제 15탄에 해당됩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티모시 달튼의 제임스 본드 첫 데뷔작이기도 합니다(사진 1).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새로운 007인 티모시 탈튼의 연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의 진중하고 어쩌면 선해 보이기까지 한 인상은 전직 주인공들인 숀 코네리나 로저 무어의 카리스마와 특유의 매력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그의 007 출연은 그 다음 작품인 제 16탄 살인면허(1989)까지 단 2편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지브롤터에서 시행된 영국 M16 정보국의 모의훈련 도중, 004 요원이 정체불명의 암살자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사건이 있은 뒤 구소련 KGB의 고위관리인 코스코프(제로엔 클래브 분)가 영국에 망명을 요청합니다. 그는 직속상관인 KGB 책임자 푸쉬킨(존 라이스-데이비스 분)이 미국과 영국의 첩보요원들을 몰래 암살함으로서 미, 소간에 불화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계획을 제지하려다 푸쉬킨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을 망명 요청의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영국정보국은 즉시 007에게 체코에서 열린 한 연주회 참석 도중 망명 시도를 하려는 코스코프를 도와 줄 것을 지시합니다. 그런데 007은 코스코프를 사살하려는 첼리스트이자 여자 저격수인 카라(마라암 다보 분)를 처치하려하나, 이상하다는 눈치를 채고 가벼운 상처만 입힙니다.
그 후 007은 그녀에게 접근하여 그녀가 사실은 코스코프의 애인인 것을 알아냅니다. 그러나 코스코프의 속셈은 그녀를 단순히 그의 음모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국제무기판매상 휘태커(죠 돈 메이커 분)와 손을 잡고 막대한 자금 횡령에 방해가 되고 있는 푸쉬킨을 영국 정보국의 힘을 빌려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모든 진상을 알게 된 007은 사태를 해결하여 하지만, 코스코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줄 모르는 카라가 건네는 약이 든 술을 마시고 오히려 코스코프 일당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사진 2). 코스코프는 그의 심복이자 킬러인 네크로스(안드리스 위스니우스키 분)와 함께 사로잡힌 007을 이용하여 다이아몬드를 당시 소련 기지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밀반출해 나갑니다. 코스코프는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마약을 구입하여 착복을 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카라는 결국 코스코프의 배신을 알게 되고 007과 함께 감방을 탈출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련에 맞서 싸우던 아프가니스탄 반군 무자히단의 도움으로 코스코프의 아편 운반 화물기를 탈취합니다. 네크로스는 007을 저지하기 위해 비행기 안까지 추격해 오나 007에 의해 결국 아편과 함께 공중으로 날려가고 맙니다.
이후 007은 불법 국제무기판매상 휘태커의 집에 침투하여 치열한 총격전 끝에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코스코프는 그를 찾아 나선 푸쉬킨에 의해 체포되어 결국 모스코바로 압송됩니다.
영화는 서방에서의 첫 연주회를 성공리에 마친 카라에게 007이 대기실에서 달콤한 축하의 키스를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코스코프와 그의 심복 네크로스는 007을 말기 심장이식 환자로 위장시킨 뒤, 이식용 공여심장이 들어 있는 상자의 얼음 속에 다이아몬드를 몰래 숨겨 밀반출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결국 코스코프는 계획대로 검사를 통과하는데 성공합니다(사진 3).

그런데 이식용 인간장기를 운반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상자에 사진에서와 같이 "electrically sustained" 즉 "전기 자극으로 박동이 유지되고 있는" 심장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사진 4).

세관원이 상자를 열어 보니 적출된 공여 심장이 전기 자극으로 몸안에서의 상태와 같이 박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사진 5, 6).

그런데 이런 설정은 의학적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아마 당시 영화 제작진의 생각으로는 이왕이면 심장을 뛰고 있는 상태에서 유지하면 그만큼 심장 기능에 좋을 것이고, 결국 심장이식수술에 도움을 줄 것이 아니겠느냐는 단순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많은 일반인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식을 위해서 몸에서 심장을 적출한다는 것은 심장에 대한 혈액과 영양분의 공급이 일시에 중단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우리 몸의 어떤 장기든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그때부터 바로 조직괴사 과정이 진행됩니다.
이 때문에 심장을 적출해서 운반하는 경우에는 얼음을 채워 저체온 상태로 만들어 심장의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여주는 것 입니다. 이때 굳이 심장이 뛰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도 운반 동안 불필요한 박동으로 인해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을 가급적 막아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에서와 같이 인위적으로 전기 자극을 주어 적출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은 마치 골절이 있는 팔에 무거운 아령을 들게 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참고로 이 영화가 개봉된 1987년 심장이식수술의 세계적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967년 12월 남아공화국의 흉부외과 의사 버나드(Christiaan Bernard;1922-2001)가 시행한 첫 심장 이식수술 성공 이후 심장이식수술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심장외과 의사들의 열광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첫 수술이 성공한 바로 그 이듬해인 1968년에는 연말까지 17개 국가의 52개 심장센터에서 모두 102례의 심장이식수술이 시행됩니다.
그러나 초기의 수술성적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어서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첫 100례의 평균수명은 29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심장이식에 대해 여러 가지 윤리적, 종교적, 사회적 문제 등을 제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다 많은 병원들이 심장이식수술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포기하게 되면서 1969년에는 세계적으로 50례 미만 그리고 1970년에는 20례 미만의 수술만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침체기속에서 꾸준히 심장이식수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곳이 바로 미국의 심장외과의사 샴웨이(Norman Shamway;1923-2006)를 중심으로 한 스탠포드 대학팀이었습니다. 비록 세계 최초의 성공적인 심장이식수술의 영광은 버나드에게 돌아갔지만 심장이식수술을 임상적으로 본궤도에 올리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 샴웨이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1980년대 들어서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시작한 사이클로스포린 면역억제요법의 소개와 함께 심장 이식수술이 세계적으로 완전히 정립되게 됩니다. 1981년부터는 심장 이식수술이 연간 100례를 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료 선진국들에서 심장이식수술이 말기심장질환 환자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가 개봉된 1987년은 미국에서는 이미 심장이식수술이 보편적인 치료 방법으로 자리고 잡고 있을 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비록 그 구체적인 방법은 틀렸지만 심장을 박동 상태에서 운반한다는 개념 자체는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이식용 장기 운송 수단으로 임상시험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2009년부터 UCLA를 중심으로 적출 심장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면서 얼음이 아니라 따뜻하게 심장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심장을 운송하는 연구가 진행 중인 것입니다(사진 7). 연구진은 이런 방법으로 심장 기능을 더 잘 보존할 수 있고, 따라서 보다 먼 거리의 이식심장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007 리빙데이라이트에서의 심장과 다른 점은, 이 임상시험에서는 심장에 철저하게 산소와 기본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박동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많은 경우가 그러했듯이, 007 영화에서의 미래 첨단과학의 진행방향에 대한 예지력 하나만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영화에서 나중에 비행기에서 의식을 차린 007은 카라와 함께 이식용 심장이 들어 있는 상자를 몰래 열어 본 뒤 다이아몬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심장도 사실은 사람의 것이 아닌 동물의 심장이라는 것을 눈치 챕니다(사진 8). 이론적으로 크기만을 놓고 보면 돼지 심장일 가능성이 높지만, 글쎄? 정답은 모를 일이다.^^ (제작/ 배급 MGM/UA Distribution Company)

김원곤 | 흉부외과
전공분야 : 정맥외과(하지정맥류), 다한증
서울대학교 흉부외과 교수로 정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심혈관외과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의 달인] 이며,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몸짱] 교수이기도 합니다. 저서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