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비밀의 화원(1993), 카핑 베토벤(2006) 등의 작품으로도 국내에도 잘 알려진 감독입니다.
그의 1995년 작품인 토탈 이클립스(Total Eclipse)는 19세기말 프랑스의 문단을 스캔들로 요란하게 장식하였던 두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t; 1854-1891)와 폴 베를렌느(Paul-Marie Verlaine;1844-1896)의 운명적 만남과 비극적 애정행각(동성애)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습니다(사진 1).

1871년 9월 당시 파리의 젊은 시인 베를렌느(데이비드 툴리스 분)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라는 16세 소년이 보낸 8편의 시를 받게 됩니다. 랭보가 보낸 시의 천재적 비범성에 탄복한 베를렌느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써 보냅니다.; <위대한 영혼 내게 오소서, 이는 운명의 부르심이니>.
랭보는 지극히 조숙한 혁명적 천재 시인으로 빅토르 위고는 그를 가르쳐 ‘어린 세익스피어’ 라고 까지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그의 시들은 대부분 불과 16세에서 19세 사이에 쓰여진 것입니다.
베를렌느가 랭보와 첫 편지를 주고받은 당시의 프랑스 사회는 어수선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전해에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시작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처참하게 패배한 여파로,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을 가진 노동자와 군인들에 의해 파리콤뮌(Paris Commune) 혁명정권이 거쳐 간지 얼마 지나자 않았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 배경 속에서 랭보는 베를렌느의 초청으로 파리에 도착합니다. 당시 베를렌느는 임신한 어린 아내 마틸드와 함께 처가집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랭보와 베를렌느 두 사람은 처음에는 시적 교감으로 만남을 시작하였으나 점점 동성애라는 묘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당시 동성애는 도덕적인 측면을 떠나 법적으로도 중 죄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게다가 베를렌느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심한 주벽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영화 내내 두 사람의 금지된 사랑은 시적 천재성과 광적인 영감을 배경으로 애증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길을 걷습니다(사진 2). 영화에 등장하는 다음 대사들은 어린 천재 랭보의 개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원래 없다. 가족이나 결혼을 지속시켜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나 이기심, 공포 따위다.>, <나는 미래의 근원이 되고 싶다.>, <폭력을 하려거든 도도하게 하고 나중에 동정하는 걸로 상대를 모욕하지 말라.>, <정말 참을 수없는 것은 참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베를렌느도 이에 못지않게 <영혼을 사랑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육체는 시들기 때문에 지금 사랑해주어야 한다.> 라고 응수합니다. 또 랭보에게 <내가 널 먹여 살리면 너는 나의 녹슬어 버린 영감을 되살려 주겠다는 것이냐>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들 둘은 이런 저런 이유로 외국으로 도피 행각을 벌입니다, 그러나 브뤼셀로 런던으로 떠돌면서도 그들이 갖고 있던 근본적인 내면적 갈등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 1873년 어느 날 심리적 갈등을 견디다 못해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진 베를렌느가 랭보를 향해 총을 쏘아 손을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베를렌느는 동성애 죄목까지 추가되면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감옥에서 베를렌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출감한 후 독일에서 랭보와 마지막 재회를 하고 쓸쓸히 헤어집니다.
베를렌느와 헤어진 후 랭보는 점점 시에 흥미를 잃고 유럽,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며 유랑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891년 오른쪽 다리에 생긴 암으로 프랑스에 돌아와 마르세유에서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그 후 결국 3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의사에 의해 처음 만들어지고 또 의사에 의해 쇠락의 길을 걸었던 유명한 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등장합니다.
바로 압생트(absinthe)라는 술입니다. 이 술은 영화 도입부에서 늙은 베를렌느가 랭보의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랭보에 대한 긴 회상이 끝난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압생트를 주문하는 장면까지 거의 모든 음주 장면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사진 3, 4).


이 술에 대한 당시 파리 예술계의 반응은 참으로 대단하여, 베를렌느는 <시인의 제 3의 눈으로>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사진 5).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압생트는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압생트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당시 분위기는 랭보와 베를렌느가 참가한 파리 시인 모임에서 한 시인이 낭송하는 <초록빛 압생트>란 제목의 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초록빛 압생트는 저주의 음료
혈관을 타고 흐르는 죽음의 독약
아내와 자식은 빈민굴에서 울고 있는데
주정뱅이는 압생트를 머릿속에 부어 넣는다.
압생트는 또한 고호, 피카소, 드가, 마네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당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문호 오스카 와일드도 압생트에 대한 그의 글에서 <계속 마시다 보면 당신이 보기를 원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압생트는 과연 어떤 술일까요?
압생트는 55-72%의 고농도 증류주로서 여러 가지 약초를 포함하고 있는 리큐르의 일종으로, 주재료는 쓴쑥(wormwood)과 미나리과 식물인 아니스입니다.
아니스는 이집트가 원산지인 미나리과 식물로서 유럽, 터키, 인도, 남미 등에 널리 분포, 재배되고 있는데, 그 열매는 독특한 향으로 향료나 빵, 술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아니스를 이용한 술은 압생트에서뿐만 아니라 터키의 라키, 그리스의 우조 등에서와 같이 지중해 주변 국가들에서는 오래 전부터 널리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압생트를 유명하게 만든 재료는 바로 쓴쑥입니다. 쓴쑥은 유럽 원산의 국화과 다년생 식물로 글자 그대로 쓴맛이 강한 식물입니다. 쓴쑥은 압생트라는 술 이름이 그 라틴 학명인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압생트는 1789년 스위스에서 살고 있던 Pierre Ordinaire란 의사가 처음 만들어 만병통치 용도의 치료약으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던 술을 그가 처음 세상에 알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 유래야 어쨌든 이 술의 제조법은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 Major Dubied란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그는 아들, 사위와 함께 1797년 본격적인 압생트 제조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중 사위였던 페르노(Pernot)가 훗날 압생트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합니다.
압생트는 19세기 중반 알제리 전쟁 시 프랑스군이 열병의 예방 및 치료제로서 널리 사용하면서, 전쟁 후 귀국한 군인들에 의해 그 인기가 더해지게 됩니다. 게다가 당시 필록세라 병충해로 인해 포도주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한편으로는 압생트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이 술은 19세기말 경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압생트의 인기에도 서서히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이 술의 시작도 의사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그 쇠락의 단초 역시 의사에 의해 시작됩니다.
1860년대에 이르러 파리의 한 정신병자 보호소의 주임의사였던 Dr Valentin Magnan의 논문을 시작으로 압생트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특히 신경정신 계통의 부작용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꾸준히 제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때마침 병충해에서 회복되기 시작한 포도주의 부활과 사회전반에 걸친 절주, 금주 분위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압생트의 주성분인 투존이 불안, 경련, 현기증, 근육장애 등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되고, 급기야 유명한 화가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가 자기 귀를 자르고 자살까지 하는 일련의 정신착란 행위조차 압생트와 연결되어 해석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1905년 스위스의 한 농부가 압생트를 마신 상태에서 부인과 두 딸을 총으로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실 이 농부는 평소에도 하루에 포도주 5리터씩을 마시던 알코올 중독자로 사건 당일만 해도 압생트 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주와 코냑 등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한 타격은 이미 기울어져 가던 압생트의 위상에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압생트는 벨기에(1906), 브라질(1906), 홀란드(1908), 스위스(1910), 미국(1912) 등에서 제조, 판매가 금지되고, 결국 1915년에는 본산지인 프랑스에서도 법적 금지 품목이 됩니다.
이후 압생트는 일부 국가에서 소량이나마 계속 생산되면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오래 동안 어둡고 비정상적인 술로서의 인식을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압생트는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신시대를 맞이한 체코를 중심으로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당시 체코의 의욕적인 주류업자 Radomil Hill 에 의해 본격적인 생산을 재개한 압생트는 옛날 맛과는 다르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국 시장 등을 중심으로 그 판매량을 꾸준히 증가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체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 등지에서도 후속 회사들이 일부 생기면서 이제는 조심스럽게 또 다른 도약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압생트에 대한 의학적, 과학적 검증도 그간 대부분 확립되었습니다. 여러 학술적 연구를 통해 지나친 과량만 아니면 압생트의 핵심 성분인 투존이 신경학적 합병증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과장된 것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현재 EU에서는 법적으로 10 mg/l 이하의 투존 함유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압생트는 보통 70% 전후의 고농도의 독주에다 특유의 쓴 맛까지 있어 스트레이트로 음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때문에 보통은 설탕을 첨가하여 희석 효과와 함께 쓴맛을 다소 완화시켜 마시게 됩니다.
한때는 매혹적인 초록빛 색깔과 뇌쇄적인 맛으로 <녹색요정(green fairy)>이란 별칭으로까지 불리었던 압생트는 현재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수입도 되지 않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사진 6). 미국에서도 2007년 5월에야 겨우 다시 합법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자체 제품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제대로 대중화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어디에서건 혹시 기회가 되어 압생트라는 술을 접하게 되면 견문을 넓히는 기분으로 한잔 정도 맛을 보기를 권합니다. 혹시 랭보와 베르렌느를 넘나들며 역사를 마시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작 장-피에르 람세이 레비 캣 빌리어스, 배급 뉴 라인 시네마)
김원곤 | 흉부외과
전공분야 : 정맥외과(하지정맥류), 다한증
서울대학교 흉부외과 교수로 정맥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심혈관외과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한 [외국어의 달인] 이며, 꾸준한 운동을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몸짱] 교수이기도 합니다. 저서로는